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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귀국한 한국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단 |
17일부터 20일까지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태권도 경기에서 한국은 금 4, 은 4, 동 2개로 종합우승 타이틀을 차지했다. 하지만 총 12명의 선수 중 여자 57㎏급에서 대회 2연패를 달성한 이성혜(26ㆍ삼성에스원), 62㎏급 노은실(21ㆍ경희대)에 이어 남자부에서는 87㎏ 이상급 허준녕(23ㆍ삼성에스원)과 63㎏급 고교생 이대훈(18ㆍ한성고)만이 금메달을 목에 걸어 역대 최악의 성적으로 체면을 구겼다.
아시안게임 태권도 경기에서 한국 목표는 금메달 8개였다. 최종 결과 한국의 목표치의 절반밖에 달성하지 못했고 역대 최악의 성적이라는 불명예 꼬리표를 달게됐다.
왜 한국 태권도가 고전을 면치 못했을까?
효자종목이자 메달밭인 태권도에서 기대치의 성적이 나오지 않자 스포츠 평론가들은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 첫 번째가 이란, 중국, 대만, 태국 등 아시아권 선수들의 실력이 평준화 됐다는 것이다. 이란은 이번 대회 남자부에서만 금메달 3, 동메달 1개를 획득해 한국을 제치고 남자부 우승에 준하는 기량을 보여줬다. 여자부 역시 한국은 금메달 4, 은메달 1개의 중국에 뒤처지면서 체면을 구겼다. 간신히 금메달 4, 은메달 4, 동메달 2개로 종합우승이란 타이틀은 빼앗기지 않았지만 이는 보기 좋은 허울에 불과했다.
태권도 기량의 평준화는 수년전부터 예고됐던 결과다. 특히 태권도가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세계 중심적인 스포츠 대회에 정식종목으로 편입되면서 국제무대에서 어떻게든 메달을 하나라도 더 가져가려는 국가들은 한국팀 전문 코치들을 초빙해 국가적인 지원을 토대로 선수들의 기량을 상당부문 끌어올렸다.
한국과 다른 선수들의 환경 또한 기량 평준화에 크게 기여했다. 보편적으로 타 국가의 태권도 선수들은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수준이 높지 않다. 그렇기에 태권도 선수로서 국제무대에 나간다는 것은 상당한 메리트가 있다. 또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에서 입상하면 자국의 위상을 높였다는 명예와 함께 국민영웅으로 추앙받는다. 몇몇 선수들은 올림픽 금메달 획득 이후 TV 방송 및 각종 CF에 출연하면서 부(富)까지 함께 얻기도 해 빈민층 어린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이 선수들이 승부욕을 자극하고 반드시 이뤄야 하는 목표로 만들어 투지를 불사르고 목숨 걸고 경기에 임하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은 과거에 비해 좋아진 환경과 선수층이 두껍다는 장점이 있지만 선수들의 의지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이길 의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해 저하됐다는 것이 태권도계 중진들의 평이다. 현재 외국팀 코칭스태프로 있는 한국인 지도자는 “내가 한국에 있을때만 하더라도 죽자살자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선수들에게는 그런 자세는 없는 것 같다. 외국 선수들은 국가대표가 되려고 몸도 아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국가대표로 국제무대에 선 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다. 실력이 많이 상승된 국가들을 보면 선수들의 환경이 좋지않은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는 빠른 성공으로 가는 길이 곧 국가대표고 국제무대에서의 메달획득이다”고 전했다.
두 번째로 국내 경기환경이 다르다는 점이다. 특히 사용하고 있는 전자호구가 다르다.
아시안게임에서 사용된 라저스트의 전자호구는 세계태권도연맹의 공인을 얻은 전자호구로 최초 사용지는 한국이다.
라저스트의 전자호구는 2005년 춘천오픈국제태권도대회를 통해 국내무대에 첫 선을 보였다. 당시 국내외를 막론하고 심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판정은 많은 이들의 신뢰를 무너뜨렸고 국제적으로도 판정의 불신은 심각했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개발된 것이 바로 전자호구이고 이를 처음 상용화한 업체가 라저스트다. 첫 반응은 기대반 우려반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라저스트 전자호구를 채택해 전국체육대회와 각종 국내대회에 사용했다. 100% 완벽한 상태는 아니지만 판정의 불신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라저스트에서 처음 상용화한 모델은 국내 경기전문가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지금과 같은 센서형 파워측정 모델이었지만 강도측정과 센서접촉의 불완전으로 많은 항의와 불만을 듣기 일수였고 이는 퇴출론으로 이어져 2008년 전국체육대회 이후 라저스트의 전자호구는 국내무대에서 퇴출됐다. 라저스트의 퇴출에 국내무대에는 KP&P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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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아시안게임 태권도 경기 국가별 메달집계 현황 |
KP&P는 센서접촉형이아닌 강도측정형으로 몸통 득점에 해당하는 부위에 센서가 있어 그 부위에 일정 강도이상 타격이 이루어지면 부심의 채점기에 진동이 전달되고 이를 부심이 판단해 득점의 유무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몸통 득점을 기계가 잡아주는 것이 아닌 최종 선택권이 부심에게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아 KP&P의 전자호구는 2009년 연세대학교총장기 대회에 첫 선을 보인 이후 줄곧 국내무대에 사용되어 오고 있다.
이번 대회를 최악의 성적으로 마감한 한국팀의 류병관 감독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해 세계선수권 등에서 세계태권도연맹(WTF)은 라저스트사의 제품을 사용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라저스트 제품이 쓰일 확률이 높았다"며 "하지만 우리는 케이피앤피를 사용했고, 선수들이 정확성 대신 강도에 초점을 맞추고 훈련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대회에서 강도로 점수를 반영하는 '대도'사 제품이 채택될 것이라는 소문에 이 제품을 갖고 훈련을 했다. 하지만 지난 9월 대회조직위원회가 라저스트사의 제품을 결정하자 우리는 부랴부랴 라저스트로 바꿔 훈련을 했지만 남은 시간은 한 달여 밖에 되지 않았다"고 경기장비의 차이와 준비의 미흡을 인정했다.
한국이 국제대회를 준비함에 있어 WTF의 공인 전자호구인 라저스트와 대도를 사용하지 않고 KP&P만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불만은 지난해부터 제기되어 왔다. 특히 라저스트의 제품을 사용한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저조한 점을 들어 한국 지도자들은 대한태권도협회(KTA)에 국제대회 선발전 만큼은 WTF 공인 전자호구를 사용해야 한다고 건의하기도 했지만 2009년 전국체육대회에 사용된 KP&P의 강도감지호구에 대해 KTA 양진방 사무총장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며 “KP&P의 강도감지호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고 주장했다.
현재 아시안게임을 최악의 성적으로 마친 한국 태권도에 대해 여론은 강한 불만을 들어내고 있다. 한 고교 지도자는 “세계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KTA의 아집과 독선이 결국 애꿎은 선수들의 피해만 늘리고 있다”며 “싫던 좋던간에 우리도 다른 나라들처럼 올림픽 등의 국제무대를 위해 WTF의 방향을 따라주는 것이 맞는 것이다. KP&P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혼자 떠드는 결과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국가대표 코치출신의 지도자 또한 “물론 라저스트나 대도 장비에 우리도 불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WTF와 조직위원회가 경기 장비를 결정하고 다른 나라들 또한 그렇게 따라가고 있는 상태에서 KTA가 너무 고집을 부린다면 결국 피해보는 것은 선수들이다. 나는 우리 선수들의 실력이 아직까지 세계 탑(TOP)수준이라고 본다. 이번 대회에서 예상보다 메달을 따내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국내의 환경에 세계무대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의 굴욕으로 전자호구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2012년 올림픽마저 한국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특히 일반호구에 비해 전자호구가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매우커진 상태에서 ‘한국의 효자종목’, ‘메달밭’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서는 경기력 향상을 위한 KTA의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최진우 기자, cooljinwoo0@naver.com, 02)424-2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