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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과학기술대학교 체육관에서 만난 신임 문대성 IOC 선수위원 |
임수정, 손태진 선수가 경기를 치루는 날인 21일 대한민국 태권도의 희망이 탄생했다. 바로 2004 아테네 올림픽 영웅 문대성의 IOC 선수위원 당선 통보였다.
태권도는 2005년 7월 싱가포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때까지 정식 종목으로 승인받았다.
2016년 올림픽에서도 살아남으려면 내년 10월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서 다시 한번 투표를 거쳐 승인을 받아야 한다.
올림픽 이전 부터 여론에서는 "한국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3개이상 획득한다면 퇴출에 대한 압박은 심해질 것이다" 는 근거없는 말들이 떠돌았다. 일부에서는 "태권도를 빼내고 그 자리를 꿰차려는 타 스포츠의 계략이 아니냐?"며 "신경 쓸것 없다"는 반응이였다.
하지만 김운용 IOC 前 부위원장과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회동 자리에서 퇴출설이 공식적으로 나와 태권도인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불안에 떨고있던 태권도계에 희망을 준건 바로 문대성 신임 IOC 선수위원 당선 통보였다. 문대성 IOC 선수위원은 총 유효 투표수 7,216표 중 3,220표를 획득하여 당당히 1위로 당선됐다. 아시아 최초 선수출신 IOC 위원의 탄생이다.
문 위원은 기본에 충실한 선거운동을 펼쳤다. 코리아 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밝혔듯이 힘든 상황이 많았다. 정부의 지원이 있기는 했지만 절대 자신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였다.
문 위원은 약점으로 지적당한 영어를 극복하기위해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또한 태권도복 차림으로 외국 선수들을 만나 1:1로 자신의 의지와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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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 신임 IOC 선수위원이 태권도복 차림으로 외국 선수들에게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
초반에 타 국가 선수들은 문 위원을 무시했다고 한다.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도 않고 모른채하고 지나가기 일수 였으며 문 위원의 말도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문 위원은 좌절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끈기로 깍듯이 인사하고 부족하지만 그 동안 열심히 공부한 영어 실력으로 자신의 의지를 선수들에게 전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위원의 노력에 감동하는 선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문 위원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문 위원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노력했다. 발차기 시범을 보여달라는 선수들의 요청에 수백번의 발차기를 선 보였으며 태권도인 문대성이 아닌 스포츠인 문대성으로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 결과는 3,220표로 2위인 알렉산더 포포프(러시아)를 1000여표 이상으로 제치고 당당히 1위로 당선 됐다.
기본의 충실한 1:1 선거운동이 유권자들인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이제 문대성 위원은 IOC 위원 교육을 거쳐 경호원이 배정된다. 국빈의 대우를 받으며 전 세계에 나아가 스포츠 외교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 문 위원의 재정적 후원을 담당할 스폰서가 없으며 국내 스포츠계의 기반이 탄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 위원의 임기는 8년이다. 8년 동안 우리는 문 위원의 스포츠 외교를 이용해 대한민국을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만들고 나아가 국가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
정부의 지원만 갖고는 문 위원의 스포츠 외교 활동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국내 스포츠계의 지원과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글로벌 기업의 후원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